정신과 의사 헥터는 일상에 지쳐있다. 직장인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은 항상 불만에 빠져있고 자기 비하에 괴로워 한다.

 

 

 

 

그들을 마주하는 것을 그저 일상적인 일이라고 여겨왔던 헥터는 어느 순간 일과 일상에 지친 스스로를 깨닫고 진정한 행복은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중국, 아프리카, 미국을 여행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행복은 무엇인가를 묻고 기록한다.

 

헥터가 만난 사람들은 서로 각자 원하는 것과 그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다르지만 조금씩의 공통점이 있다.

 

'행복'과 '일상에서 느끼는 떳떳함', '죽음을 앞두고서도 고통을 견뎌가며 꼭 만나야 하는 사람', '나에게 부족한 것', '현실을 불행하게 하는 것'들에는 지금 함께 하는 사람, 가족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

 

회사에서의 업무와 사회 생활에 지쳐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는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과 만남이 힘들어질때가 있다. 이것은 가족이나 곁에 있는 소중하다고 여기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분명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들이 건네는 위로와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편안해짐을 느낀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지금 내 일상에서 내가 놓친 행복을 찾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떨렸던 마음, 열심히 해야지 하고 결심했던 순간이 떠올랐고

 

처음 집을 나와 혼자서 살아갈 첫 내 집을 청소하며 느꼈던 설레임과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어렸을 때 느꼈던 우리 가족, 세상의 전부였던 부모님!

 

 

 

 

그리고, 메모를 남기는 습관은 일상에서의 소중함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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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신저스>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너무 많은 인류로 인해 자원이 고갈되고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풍요로운 행성으로 이주하기 위하여 엄청난 기술로 만들어진 우주선을 타고 5,000여명의 인간이 120년을 동면 상태로 이동한다.

 

그러다 운석과의 충돌로 동면기에 오류가 발생하고 주인공 '짐 프레스턴'이 새로운 행성 도착을 90년 앞두고 깨어난다. 

 

 

 

 

우주선 안은 고도로 발달 된 기술의 집약으로 구성되어있다.

 

의식주는 충분히 제공되고 술, 오락 시설까지 호화롭게 갖추고 있다. 하지만 살아있는 생명체는 하나도 없고 (모두 잠들어 있다.) 오직 로봇과만 대화하며 다시 잠들 수도 없는 상태로 주인공은 홀로 1년을 외롭게 지낸다.

 

동면기 안에서 잠든 수 많은 사람들을 지켜만 보다가 아름다운 여성 '오로라 레인'을 발견하고, 외로움과 살아있는 생명체를 만나고자 하는 욕망에 한참을 갈등하다 동면기를 조작하여 오로라 레인의 잠을 깨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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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 사람은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하지 못하고 우주선 안에서 남은 생을 보낸다.

 

논리와 이성으로 판단할 때, 남자 주인공인 짐 프레스턴은 정상적으로 동면하고 있는 다른 사람을 깨워서는 안되었지만 고독과 홀로 지내는 고요하고 피폐한 생활에 지쳤고 죄책감을 가지고서라도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했다.

 

또, 동면기의 오류가 아닌 타인의 의도로서 깨어난 오로라 레인은 우주선 안에서 한 평생을 살다 죽어야 하는 삶이 끔찍했지만, 그 시간을 홀로 보낼 수 없어 남자 주인공에게 복수하거나 그를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은 혼자 고독하게 살아가기 어렵고, 타인과 사회적인 교류가 필요하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의 각각의 상황이 어느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망친 사람과 단 둘이 죽음까지 같이 지내야 하는 상황에 놓여진 여자 주인공의 심정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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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나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 확실하고 어떠한 일을 성취하고자 기대하거나 노력할 수조차 없는 순간이 온다면 과연 나는 남은 생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다.

 

항상 지금의 내가 느끼는 현재는 괴롭고 힘들다. 내일의, 주말의, 다음 달의 어떠한 이벤트를 '기대'하고 살아가게된다. 만약 그러한 기대감이 없다면 보람 또는 성취감이 없이 고통만 존재하지 않을까..

 

이처럼 영화 속의 두 주인공은 (혼자이든, 둘이든) 새로운 기대가 없는 현재에서 큰 변화 없이 계속해서 살아가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주속에 갖혀,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분명히 맞이하게 될 죽음을 앞두고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영화에서 두 사람은 우주선 안에 나무를 심고, 꽃을 심었다.

 

흙이라고는 한 줌 없는 우주선 안에서 서로를 위해 무언가를 해내고자 했다.

 

어쩌면 사람은 괴로움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나서고 마주한 순간에서 즐거움을 찾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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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출근하지 않는 월요일이면 '영화나 한편 보고싶다.' 라고 생각하곤 하는데 머리아프고 어려운, 잔인한 영화보다는 잔잔하고 기분 좋은 이야기의 영화를 찾게 된다.

 

그래서 주로 일본 감성의 아기자기한 영화를 찾아 보게 되는것 같다.  

 

영화<미나미 양장점의 비밀>은 제목과 포스터만 보고 선택하게 되었는데, 딱 편안한 기분으로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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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 양장점은 주인공 이치에의 할머니가 처음 시작한 가게이다. 2대째로 이치에가 운영하며 할머니의 옷감과 패턴으로 옷을만들고 할머니가 만든 옷들을 수선해준다.

 

미나미 양장점에서 자신의 옷을 만들어 입은 사람들이 차례 차례 나오는데 모두가 그 옷을 너무 사랑한다.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애정을 갖고 지켜온 것들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없다." 고 말한다.

 

이미 떠난 할아버지의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며 살아가는 할머니와 어머니가 좋아하던 옷을 자신의 몸에 맞게 수선해서 입는 딸은 옷을 포함한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오래도록 지켜내려고 한다.

 

남자 주인공인 후지이는 소량 생산하는 미나미 양장점의 옷을 더 많이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입을 수 있게 브랜드를 만들고자 제안하는 사람인데, 이치에의 소신과 미나미 양장점의 옷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며 제안을 포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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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들이 꿈을 꾸게 하는 옷을 만드는 이치에 스스로 자신은 꿈을 꿀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할머니의 옷을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할머니가 만든 옷만을 수선하며 지내왔지만, 새로운 고객인 어린 학생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자신만의 드레스를 원하며 자신이 그 옷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 내내 어두운 파란색, 검정색만 입고 나오는 이치에는 스스로 자신의 옷을 만들지 않으려고 결심하여 이에 답답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자신을 달래지만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 밝은 하늘색의 옷을 입고 자신의 옷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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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일이 나의 욕심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돌아와 만원 어치의 햄버거 세트를 주문할까 말까, 고생했으니 그동안 모은 돈으로 멀리 여행 가고싶다 하는 고민들을 스스로 내 욕심으로 치부하여 포기할 때가 있다.

 

또,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맞지 않는 회사 생활을 그만 두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을 때, 여러 여건들을 고려해보면 어쩌면 이기적인 결정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결국 이런 생각들은 치즈케이크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한 결정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이 어두운 옷을 벗어나 밝은 옷을 입고, 밝은 표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까 하고 생각해 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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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영화)

 

곧 재개봉한다는 유명한 영화 <트루먼쇼>, 주인공 트루먼이 자신의 일생이 전부 조작된 것이고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든 사람들에게 티비로 방송되는 쇼라는것을 깨닫게 되는 내용이다. 우리 모두의 현재 삶은 모두 치열하고 고달프고 아름다운데 그런 자신의 모든 삶의 노력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흥미거리, 요기거리였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의 충격을 생각보다는 가볍고 긍정적으로 그려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모든 생활이 대중들에게 가감없이 방송되어지는 것, 또 자신이 추억하고 기억했던 모든 사건 사고들이 모두 조작되어있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이 내용이 영화가 아닌 현실이었다면 그 사실을 접한 개인은 굉장히 커다란 혼란 속에 빠지게 될 것이고 새로운 삶을 찾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무너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는 방송으로 표현되었지만 우리 삶에서 타인에 의해 가십거리로서 개인적인 일들이 남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또는 몰래카메라 영상이 인터넷에 나도 모르게 유포되는 것 등이 영화가 얘기하고자 하는 상황과 비슷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세트 밖의 세상은 진짜 현실 세계인지, 어느게 현실이고 가상인지 구분도 어려운 <매트릭스> 같은 상황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논의거리가 충분히 많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구인지, 이게 현실인지', '개인의 삶이 대중의 즐거움으로 보여지고 시선을 받을 수 있는지', '인권은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지' 나아가 우리가 사는 현재에서도, '예능프로그램에서의 출연자가 희화화되는 것이 그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방송되어지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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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에 끌려 보게된 영화 <오늘 밤, 로맨스 극장에서>. 주인공 아야세 하루카가 너무나도 예쁘게 나온다. 일본 영화를 자주보지 않아서 남자 주인공 사카구치 켄타로를 처음 알았는데 웃는 모습이 너무 멋지다! 이 영화는 오래 전에 제작된 흑백영화와, 그 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너무나도 좋아하게 된 남자 앞에 그 여자 주인공이 흑백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내용이다. 둘은 좋아하게 되지만 이 흑백 영화의 주인공은 타인과 몸이 닿으면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그렇지만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아야세 하루카는 흑백영화에서 자유롭고 싶은 말괄량이 공주로 나오는데, 현실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시종이라고 부르고 무례하게 행동한다. 사카구치 켄타로와 함께 지내면서 흑백영화와는 다른 현실의 아름다운 색깔을 이해하는데, 그 과정에서 본인도 색을 찾아가고, 점차 남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아야세 하루카의 흑백으로 된 몸과의 대비를 위해서인지 다른 배우들, 배경, 세트들의 색이 굉장히 선명하게 나타나고, 알록달록 다양한 색으로 표현된 것 같다. 색감이 너무 예쁜, 동화같은 내용과 또 그러한 결말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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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네이버)

 

위의 사진은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온 다양한 모양의 사진틀이 주인공의 얼굴을 표현했는데, 이 사진틀이 변해온 시간처럼 아델라인은 오랜 시간, 100년 이상을 살아간다. 블레이크 라이블리의 아름다운 모습과 영상미에 아델라인의 늙지 않는 영원한 시간이 어쩌면 특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얼마 전 재미있게 본 드라마 <도깨비>에서 천년을 살아온 주인공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남겨지는 시간이 고독하고 쓸쓸하다고 말했다(신이 준 벌이라고함). 물론 아델라인은 상대적으로 훨씬 짧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그래도 10년 주기로 자신의 이름과 주거지를 바꾸는 '도망치는' 삶은 외로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속에서도 키우던 강아지의 죽음으로서 외로움을 표현하는 것 같지만 영상미와 아델라인의 아름다운 모습... 때문인지 생각보다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강아지를 사진으로 찍어두고 꺼내보며 그리워하는 주인공은 정작 본인의 사진은 남겨두지 않는데(타인에게 자신의 상태를 들키기 않기 위해서), 이 부분에서 아델라인 자신이 그 강아지처럼 남들에게 기억되고 싶고,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멈춰진 시간 때문에 딸과도 떨어져 살아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약속할수도 없이 떠돌아야하는 주인공의 외로움, 그 외로움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공포에 대해서 생각해볼수 있었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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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노다메 칸타빌레 버전 1>은 치아키가 지휘자로서 성장해가는 스토리를 그렸고 <최종악장>은 드라마처럼 1편에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노다메가 피아노를 진지하게 치게되는 계기와 노력들을 보여준다! 
영화의 주요한 내용은 치아키와 노다메, 노다메 주변의 친구들이 성장하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성장을 보고 노력하게 되어 모두 스스로 자신의 꿈에 다가가는 것이다. 서로의 성장을 바라보는 그들은 무언가 미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영화에 이 감정들은 그대로 드러난다. 치아키의 완벽한 무대를 본 노다메가 객석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을 보고 예전에는 그저 감동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무언가 노다메 스스로 불안감, 자기 미래에 대한 혼란, 걱정스러움이 섞여있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런 감정은 그 주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들의 행동, 표정에서 나타난다. 
 이 것을 질투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러한 감정을 굉장히 당연한 것, 성장의 동력이 되는 것으로 나타내는 것이 새로웠다. 흔히 다른 매체에서는 이러한 질투가 분란의 씨앗으로 표현되고 갈등을 겪는 적이 많은데 시간의 제약이 있는 영화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던 건지 어쨌든, 나는 이러한 표현이 매우 와닿았다. 마치 뭐든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 확실한 영화속의 주인공이지만 왠지 감정이입이 되었고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 나도 할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했다. 불안하고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위안과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posted by paigee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대학교 전공에서 수없이 접했던 정체성, 이름과 관련이 있어서 였는지 영화를 보고 난 후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의 '이름'은 서로에게 기억되고 시간, 공간 너머 실제로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끈이 되어준다. 실제로 영화에서는  두 사람이 계속해서 서로를 잊지 않기, 다시 만나기 위해 이름을 기억하려고 한다. 이름을 잊은 순간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무슨 상황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 제목에 마침표(.)가 꼭 붙는데, 두 사람이 서로 확실히 서로를 규정 지어야, 확실히 정체성이 형성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보았다.

 

 

또한 이 영화를 보면서 김춘수 시인의 <꽃> 이 떠올랐다. 작은 몸짓에 불과한 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에게 와서 꽃이, 의미있는 존재가 된다는. 이름은 단순히 어떤 사람 혹은 사물을 지칭하는 것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신카이 마코토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Q. 주인공 미츠하와 타키 이름을 어떻게 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타키(瀧)는 옆에 삼수변이 있지만 용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습니다. 용의 이미지가 혜성의 이미지하고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용은 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존재입니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호수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호수를 연상시킬 수 있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타키라는 이름을 쓰게 되었습니다.

미츠하(三葉)는 일본에서는 옛날부터 물의 신 중에 미츠하메가 있습니다. ‘미즈하메’라고도 하는데 그 이름의 울림이 왠지 모르게 좋았습니다. 거기에서 따서 미츠하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타키와 마찬가지로 물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좋다고 생각했고, 특히 이토모리 마을이 호수, 물과 매우 연관이 있기 때문에 미츠하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출처: 맥스무비 블로그 http://naver.me/GD9uDdGe)


 

감독의 인터뷰에서 보면 용, 물의 신은 둘 다 이토모리 마을의 호수와 연관되어 있으며 이름 자체로도 둘에게 어떠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해서 분명 타키와 미츠하 둘의 이름은 두 주인공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이름으로 인해서 서로를 기억하고 연결되게 된다. 어쩌면 빨간 끈과 같은 역할이 아닐까!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추가로 '이름'과 관련된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떠올랐다. 자신의 이름을 잊으면 원래의 나, 나의 정체성을 잊고 다른 삶을 살기 때문에 이름을 절대 잊지 말라는 부분이 나온다. 센과 치히로는 동일 인물인데, '센'은 본명 '치히로'에서 몇 글자를 빼서 나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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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영화 관람 후 읽어주세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종로3가 서울극장에서 시네마살롱이라는 GV가 종종 진행된다. 영화 관람 후 관객과 함께 영화에 대한 추가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우연히 나미야잡화점의 기적이 시네마살롱으로 진행된다는 사실을 알고 관람하게 되었다. 일단, 서울극장이 너무 쾌적하고 깔끔해서 자주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몇 년 전에 리뉴얼을 했다고 하는데, 오래된 극장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너무 좋았다!

 

영화는 세명의 주인공이 도둑질을 하고 도망치다가 폐가가 된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가게 되면서 시작된다. 잡화점에서 오래된 물건들을 발견하게 되고, (과거에서 미래로 넘어온) 상담 편지에 답장을 해주게 되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이야기 + 나미야 잡화점에게 상담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진행된다. (등장하는 모두가 사실은 연관되어 있는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라는 소설은 영화가 개봉하기 몇 년 전부터 정말 유명하고 인기있는 책이라고 알고있었다! 계속 읽어봐야지 하다가 결국은 영화로 먼저 접하게 되었다. 일단 영화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죽박죽 진행된다. 책을 미리 읽은 한 관객은 책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방식이 영화에서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된다고 했다. 영화의 스토리 자체가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될 수 없는 이야기라고도 느껴졌고 이러한 진행 방식이 영화의 (또는 글의) 흥미를 더해주지만, 사실 약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 번 더 보고 확실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영화였다. 히히. 영화에 나오는 잡화점이나 풍경의 색깔 등 영상미나 분위기가 좋았다. 한번쯤 걷고 싶은 거리와 풍경!

 

영화를 보다가 무릎을 탁친 부분은 나미야 할아버지가 '그린리버'에게 상담을 해주게 되는데, 본인이 한 답장 때문에 '그린리버'가 자살을 한 것이 아닌가 괴로워 하는 장면이었다. 그동안 나도 타인의 고민과 걱정에 가벼이 잘못 던진 한 마디가 있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나의 한마디가 다른 누구에게 커다란 영향이 될수도, 인생을 바꿀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타인의 마음을 듣는 것 조차 사실 아주 무거운 일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영화에서는 '그린리버'가 자살한 것이 아니었고, 나름 해피엔딩이지만..

 

역시 영화는 우리네 일상의 어려움과 피하고 싶은 복잡함을 마주하게 만들어준다. 계속 생각하게 한다.

 

posted by paigee